호응이 일상
지진과 포항공대 본문
포항에 여진은 계속되고 있고, 나는 인천 집에 피난 아닌 피난을 와 있다. 집에 누워있으니, 문득 전국에서 지진에 가장 안전한 대학은 역설적이게도 포항공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포뽕에 취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고, 상당히 이성적인 판단에서 나오는 생각이다. 먼저 우리학교는 대한민국 지진기록 역대 가장 큰 지진과 두 번째로 큰 지진을 진원과 상당히 가까운 지점에서 겪었다. 경주 대지진으로 이미 우리학교 대부분의 구성원은 지진 대피 숙련도가 전국 최상위 레벨을 자랑하고, 두 번의 큰 지진을 거쳤음에도 몇몇 연구실 천장이 떨어지거나 기숙사 벽에 금이 좀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매우 건재하여 내진설계 기준을 적용받기 이전인 1986년에 완공되었음에도 상당히 튼튼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신축기숙사는 2007년경에 완공되어 내진설계 기준을 충족하며 규모 7.0의 지진까지 견디도록 설계되었다고 하며, 사실 신축기숙사를 제외하고는 모든 건물이 5층 이하이고 그나마 6층인 도서관은 2003년에 완공되어 내진설계가 적용되어 상당히 안전하다) 물론 그럼에도 떨어진 천장이나 금 간 벽은 보수를 해야 하며, 안전점검도 꾸준히 해야겠다.
한 번의 지진을 겪어서 그런지 대부분의 대응은 빠르고 올바르게 진행되었다. 생활관자치회나 RA 등 많은 사람들이 사생들의 안전을 책임지며 불철주야 일했고, 많은 직원분들도 재난 대응에 힘써주셨다. 무엇보다 대피가 정말 빠르고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불안감을 유발하는 여진이 계속 발생함에도 휴강 조치가 지진 다음날 아침에 규모 3 이상의 여진을 겪고 나서야 이루어졌다. 수요일에 귀가할 수 있었던 사생들이 귀가를 늦게 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휴강 조치가 내려졌음에도 수업을 강행하려는 교수님들이 계셨다. 무엇보다, 휴교 조치가 아닌 휴강이라 대학원생들에게는 '대기 근무'라는 알 수 없는 말로 연구실에 묶어뒀다. 이건 참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되며, 몇몇은 방송국 제보를 준비한다고 한다.
이렇게 속이 편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학교는 매우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어 불안감이 확 들지는 않았다. 그저 그냥 그 순간이 조금 무서웠을 뿐이다. 그런데 물론 이런 소리를 함부로 해서는 안되겠지만, 덕분에 휴강까지 얻어 시험 끝나자마자 예기치 못한 귀가를 하고 요양을 하고 있으니 나로써는 상당히 이로운 결과였다. 당장 포항 북부만 가도 여러 이재민들이 귀가도 못하고 체육관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걸 생각하면 사실 이딴 소리를 지껄여서는 안되겠다. 하지만 6주에 걸친 고된 시험기간이 끝나자마자 오아시스같은 휴강을 맞으니 그런 생각을 안하려 해도 안할 수가 없다. 참 철이 없긴 한가보다. 토요일 밤에 내려갈 계획인데, 일요일에 총학에서 내려온 봉사활동이나 참가할까.
추가. 그리고 조선일보 1면에 우리학교가 얼마나 튼튼한 지에 대해서 기사가 났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3330317
박태준도 참 대단한 사람이다. 예전만은 못하지만 사립대임에도 국립대를 능가하는 학생 지원을 해 주는 등, 여러모로 참 대단한 학교다. 다만 박태준이 가장 큰 실수를 했다면 이런 학교를 포항에 지었다는 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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