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응이 일상
[20190211] 영종도 드라이브 (feat. 모교 인천과학고) 본문
개강 이후로 나만의 시간을 갖기 굉장히 어렵다. 다행히 시험이 다음주 수요일로 잡힌 바, 조금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보는 저번달의 영종도 드라이브.
영종도는 나에게 굉장히 많은 기억을 심어준 섬이다. 동생도 태어나기 전, 아버지는 인천공항 활주로 공사현장에서 근무하셨고, 일반인이라면 쉽게 갈 수 없는 활주로 한가운데에서 찍은 사진도 갖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영재원의 'ㅇ'도 모르던 나에게 우연히 기회가 닿게 되어 인천과학고 영재원 3차 시험까지 보게 됐으며, 살면서 그런 종류의 시험도, 면접도 봐 본 적이 없던 나는 와X즈만 등의 학원을 어릴 적부터 다니던 친구들에게 밀려 떨어졌다. 그리고 3년 뒤, 면접조차 가지 못할 뻔했지만 천운이 뒤따르며 꿈에 그리던 인천과학고에 입학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할 말이 굉장히 많으니 기회가 닿으면 하기로 하고.
학교에 대한 기억 말고도, 우리 부모님은 드라이브를 굉장히 좋아하셨기 때문에 영종도에 종종 오곤 했다. 뻥 뚫린 공항남, 북로를 달리고, 어느 도로 중간에 차를 세워두고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구경하곤 했다. 을왕리 어디선가 고기를 구워먹은 적도 있고, 고기를 구워먹은 그 날 우리가 있던 곳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서 백상아리가 발견되었다는 라디오를 들은 적도 있다. 아버지가 해외로 가신 이후로 우리 가족이 영종도로 드라이브를 가는 날은 없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와 영종도로 드라이브를 가기로 했을 때 묘한 아련함에 잠깐 잠겼었다.
집에서 영종도를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인천대교를 건너는 것인데, 인천대교가 없던 어릴적 다니던 하부도로의 추억을 살려 영종대교를 건넜다.
해물칼국수를 먹고 제일 처음 간 곳은 을왕리 해수욕장이었다.
맑은 날은 아니었다. 한동안 동해바다만을 보다가 서해바다를 보니 딱 바다 짠내 가득할 것 같은 서해느낌 그 자체.
을왕리 해수욕장 앞은 횟집이 가득하고 손님을 유도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어 조금은 무섭다. 주차된 차도 많고,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도 꽤 많다. 하지만 그 옆 왕산해수욕장은 그런 횟집도 사람도 많이 없어 평화롭다.
저 멀리 보이는 왕산마리나가 궁금해서 한 번 가 봤다.
별 건 없었다. 곧고 정갈하게 쌓인 테트라포드가 인상적이다.
용유도 해변을 돌아보고 공항북로를 질주한 후 집에 돌아가기 아쉬워 모교를 들렀다. 방학이라 선생님도 안 계실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내가 아는 선생님들 전부 다른 학교로 전근가셔 학교 안으로 들어갈 이유는 없었다.
언제 봐도 정말 초라한 모교 본관의 모습이다. 맞은편 국제고나 뒤편의 하늘고에 비하면 더더욱. 심지어 4층의 면학실은 2006년경 증축된 곳이다.
운동장과 테니스장을 바라본 모습이다. 저 멀리 아파트와 빌딩은 내가 학교다닐 때만 해도 볼 수 없던 건물들이다. 황량했던 영종도는 점차 건물들과 아파트들로 채워지고 있다.
본관과 실험동 사이 정원이다. 나무들도 많았으나 내가 2학년이던 2015년 노린재가 너무 많이 나와 전부 베어버렸다. 정면에 보이는 공사중인 건물은 모교가 아닌 연수원 건물.
기숙사 청운관의 모습이다. 2, 3학년 남학생들이 살고있으며 2인실이다. 과거에는 저 좁은 방에 2층침대를 두고 4명이서 닭장처럼 썼다고 한다. 뒤편에 있는 신축기숙사 청명관으로 4인실이며, 2층과 3층은 1학년 남학생, 4층과 5층엔 여학생이 거주한다. 언제까지나 내가 학교다닐 때 이랬다는 것이며 3학년 비율이 높아진 지금 어떻게 사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리고 본관 앞엔 작은 연못이 하나 있다. 물이 굉장히 더러웠으며, 지금은 사라진 생태동아리가 아마 어떤 대회 출전을 계기로 수질 파악 및 개선에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님 말고.
학교 자체에 대해서는 크고 작은 사건들도 너무 많았고, 말도 안되는 똥군기와 과도하게 보수적인 분위기 등 좋지 않은 기억들도 많다. 심하게 억압된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서 고등학교 시절만큼 재밌던 시절이 없었다. 하루 종일 친구들과 몸 부대끼고 살자니 이런저런 추억들도 참 많다. 미국 서부로의 수학여행이나 대학탐방, 꽃동네 봉사, 축제공연 등 행복했던 추억들도 많고, 또 고등학교 1학년 때만큼은 내 가슴에 손을 얹고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열심히 공부했다. 여러 모로 미운 학교지만 미운 정도 정이라고, 이 학교를 빼놓고 내 인생을 이야기할 수 없다. 시간이 된다면 고등학교 시절 추억팔이를 해보고 싶다. 영종도 하니 모교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아무튼 내 삶에 긍정적인 방향이든, 부정적인 방향이든 큰 밑거름이 된 학교였다.
아무 말이나 하다 보니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렀다. 어쨌든 영종도는 수도권에서 손에 꼽는 드라이브 명소이다. 오죽하면 BMW 드라이빙센터가 영종도에 있다. 내가 나이가 차서 차를 빌릴 수 있게 되면 직접 운전해보고 싶은 곳이다.
'나들이와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0321] 2019 봄 제주도 여행영상 (0) | 2019.04.20 |
---|---|
[20190309] 경주 양동마을 (0) | 2019.03.15 |
[20190116] 부산 겉핥기 (1) | 2019.01.20 |
[20181028] 경주 불국사 (6) | 2018.11.23 |
[20181012] 경주 첨성대와 핑크뮬리, 그리고 동궁과 월지 (6) | 2018.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