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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을 보내며 본문

잡담

2018년을 보내며

Hongii 2019. 1. 2. 02:15

2018년은 단연 최악의 해였다고 말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이 많았던 10대를 떠나보내며 20대에는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기 무섭게 스무 살이 된 2017년은 그 당시 가장 우울한 한 해를 보냈고, 그보다 심각한 2018년을 보내게 되었다.


1월에는 아프리카와 홍콩 등을 다녀오며 즐겁게 여행을 다녀왔지만, 거기까지였다. 2, 3월에는 좋지 못한 일을 겪으며 우울해졌지만 다행히도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됐다. 하지만 그것도 과제와 할 일들로 가득 차 다른 생각들이 들기 어려울 정도로 바빴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말도 안 되는 1학기를 보내고, 상당히 충격적인 과목에서 충격적인 학점을 받긴 했지만 나름 커리어하이를 찍으며 선방했다. 그렇게 학점 상승의 반등이 되는 학기가 되리라 믿었다.


인턴을 다녀오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처음 지원했던 넷마블은 면접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서류에서 떨어졌다. 월급 타면 무얼할까 김칫국을 마셨지만 그것은 쓴 맛이었다. 친구의 제안으로 다음 지원한 곳은 한국뇌연구원이었다. 하는 일도 재미있어 보이고 나중에 대학원 선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월급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크게 기대했다. 면접도 나쁘지 않게 보고 나왔고, 여름방학은 대구에서 지내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것도 떨어졌다. 왜일까?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아무튼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매우 컸고, 정말 큰 회의감을 느꼈다. 정말 다행히도 탈락 메일을 받은 지 16분 뒤에 엘지 디스플레이로의 인턴 기회를 얻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거기서 번 돈으로 카메라도 장만할 수 있었다. 나쁘지 않았다.


1학기를 보내면서 호기롭게 7전공을 2학기 시간표에 박았다. 대체 왜 그랬을까. 2학기의 시작은, 나를 심한 죄책감과 무기력함에 빠뜨린 일(이라기보단 나만의 생각)로 식음을 거의 전폐하다시피 하며 첫 주를 보냈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끊어놨던 헬스도, 그리고 술자리도 열심히 다녔다. 엠티를 다녀오며 어느 정도 회복되었고, 밥버거 하나도 벅차던 입맛도 되돌아왔다. 2학기는 바쁘지만 열심히 살았다.


학기 중반이 지나자 내 생활 패턴이 완전히 무너졌다. 평소 과제를 미루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전부 닥쳐서 할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느 새 내가 방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은 자거나 유튜브 등을 보며 노닥거리는데 썼고, 그런 나를 룸메는 정말 한심하게 봤다. 출석 상태는 날이 갈수록 개판이 되었지만 과제만큼은 정말 성실히 제출했다. 이틀 밤을 내리 새 가며 불가능할것 같았던 과제들도 다 내고 그걸 다 해냈다는 생각에, 버텨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미적분학 멘토링도 피곤하지만 열심히 가르쳤다. 어쩌면 다른 과목 공부보다 미적분 공부를 더 열심히 했을 수도 있다. 참 보람찬 일이었다. 18학번들이랑 1년 동안 학교생활을 지도해주는 SA도 잘 마쳤다. 기말고사만 잘 보면 너무 힘들었지만 후회는 없는 학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틀 내에 전공 과목 5개를 몰아서 보게 되었다. 선택과 집중은 어쩔 수 없었고, 나름 합리적으로 선택해서 공부했다. 과제했던 기억을 되살려 이틀 밤을 다시 내리 샜고, 나를 채찍질해가며 공부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시험을 보다 졸았고, 선택과 집중은 했지만 그 과목에서 버렸던 부분에서 생각보다 많이 나오며 처참히 망했다. 버렸던 과목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굉장히 실망했던 과목은 분자생물학이었다. 입학해서 처음으로 학기 중에 재미붙여 열심히 공부한 과목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학교를 다니며 가장 낮은 학점을 받았다. 다른 기대했던 과목도 남들에 비해 크게 낮은 학점을 받았다. 그깟 학점 살다 보면 못 나올수도 있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기엔 허탈함과 공허함이 너무나도 컸다. 내 형편없는 능력에 크게 무기력해졌다. 장래에 대한 과도한 불안함에 공황장애라는 마음의 병까지 얻어가며 재작년, 그리고 작년 내내 미래를 구상했고,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가는 듯 했지만 한 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내가 실망스런 학점을 받은 과목들이 전부 내가 가고 싶었던 랩의 교수님 수업이었으니.


무엇보다 힘들게 했던 건, 어디 하나 제대로 의지할 곳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아니, 의지할 곳이 없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만 20년 넘게 살면서 의지할 곳이 제대로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으니. 그래도 사람이 너무 힘들면 무어라도 붙잡고 의지하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외국에, 그것도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나라에 홀로 나가 계시는 아버지와, 고3 동생을 뒷바라지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 그리고 건들기만 하면 쉽게 예민해지는 고3 동생 사이에서 가족 중에 가장 행복해야 했던 사람은 나였기 때문에 가족에게 의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에게, 그리고 인스타에 살살 징징대 봤다. 사실 내가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느껴질 대면 항상 그랬다. 이들이 내가 힘든 것을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에, 지나가는 투로 위로라도 해줬으면 하는 바람에 그랬을까. 굉장히 방어적인 기작으로, 내 이성이 생각하는 바와는 무관하게 그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잘못이었나보다. 일부 사람들은, 정말로 내가 '나 이만큼 힘들다!'라고 자랑하기 위해 일부러 많은 일을 벌려놓고 산다고, 그걸 자랑하며 즐거워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걸 내 앞이 아닌, 내 뒤에서 이야기한다. 그걸 알게 되니 내 모습은 꼭, 누구의 족쇄가 더 무거운지 자랑하는 노예의 모습이었다.


나는 고통을 즐기는 마조히스트가 아니다. 나도 놀고 먹는 것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나에게 여유 시간이 많아지면 그만큼 나를 갉아먹는 부정적인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서, 그리고 그게 나에겐 정신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것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한 내 방어 기작 중 하나가 바로 물리적으로 바쁘게 사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잘 하는 것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에, 내가 나의 가치를 더 올리기 위해서 되도 않는 것 하나만 더 열심히 파고드는 것 보단 여러 개를 할 줄 아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바쁘게 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뒤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을 알고 나니 조금, 아니 많이 슬펐다. 그냥 내가 평소에 징징댔던 것이 얼마나 귀찮았을까, 그들에겐 미안할 뿐이다. 그리고 결국 나에게 힘이 될 존재는 나 혼자 뿐일라는걸 다시금 깨달았다.


항상 매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점에 대해 만족스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다음학기는 다를 것이라 기대했고,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다음 학기의 나를, 올해의 나를 믿을 수가 없다. 내가 나에 대한 신뢰를 잃었을 때, 나 자신에게 실망했을 때만큼 슬픈게 없는데, 지금 내가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다를 것이라고 다시 한 번 속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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