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0171014] 캠퍼스 산책

Hongii 2017. 10. 15. 01:22

퀴즈 공부가 너무 짜증나는데 마땅히 풀 방법이 없어서, 바람이라도 쐴 겸 산책을 나갔다 왔다. 최근에 진정이 잘 안될 때 바람만 쐬고 들어오고는 했는데, 오늘은 아예 캠퍼스 한 바퀴를 돌고 오기로 한다. 그냥 돌면 심심하니 음악을 들으면서 걸었다. July라는 작곡가의 곡을 들었는데, 차분한 뉴에이지라 산책하면서 듣기 아주 좋다.


기숙사에서 도서관가는 길을 지나, 평소에 전혀 올 일이 없는 대학본관까지 걸어갔다. 공학동 사이는 전부 리모델링되어 옛날의 느낌을 찾을 수 없는데, 대학본관 아래로는 아직 리모델링이 되어있지 않아 80년대 개교 당시의 느낌을 그대로 담고 있다.


공학동 사이는 바닥이 전부 화강암과 기타 등등으로 바뀌었는데, 아직 대학본관 남쪽으로는 타일바닥을 유지하고 있다. 아직 변하지 않은 이 장소를 보니 고등학교 1학년 때에 대학탐방을 왔을 때가 생각난다. 캠퍼스 투어 시간이 밤이어서, 이 시간의 이 풍경을 보니 그 때 생각이 자연스럽게 났다. 과학고 입학 후 좀처럼 나오지 않는 성적으로 힘들었던 고등학교 1학년 1학기였지만, 그래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가 또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대학과 당장의 성적만 걱정하면 되는,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행복해질 것만 같았던, 그런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시기. 그리고 또... 앞으로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으로 가득찼던 시기였다. 새삼 아련해졌다.


노벨 동산을 지나 캠퍼스 맨 좌측의 도로를 따라 대운동장 방향으로 올라온다. 가로등도 없어 아주 춥고 외롭고 무서운, 캄캄하기만 한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대운동장에서 꺾어서 학관 방향으로 다시 내려가면 이 길을 볼 수 있다.


역시나 대학탐방 캠퍼스 투어 때 이런 분위기에서 걸었던 길이다. 갑자기 신기하다. 당시 내 성적은 포스텍과는 거리가 멀었고, 목표 대학은 카이스트였기 때문에 여기에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노력의 결실과 카이스트 면접에서의 찰나의 실수로 어쩌다 보니 내가 이 학교의 학생이 되었고, 벌써 2학년이 되어 2학기를 보내고 있다.


두려울 것이라고는 오직 대학과 성적밖에 없었던 고1때였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행복하고 미래가 밝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실을 뼈저리게 깨달아 버린 지금, 미래라고는 조금도 기대되지도 않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남들이 하지 않는, 거의 시도된 적 없는 거대한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 중이다. 그래서 남들보다 빡센 시간표와 커리큘럼을 짜놓고 살고는 있는데,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면 사실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어쩌면 더 많이 노는지도 모르겠다. 공부가 재미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는데, 굉장히 하기 싫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그 어느 공부에도 집중을 오랫동안 하지 못하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게 되며,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나중에 자책하고. 그래서 요즘은 그냥 밤 새가며 되지도 않는 공부를 하느니 차라리 일찍 자려고 한다. 하지만 그냥 자려니 불안감이 가시질 않아, 마음을 차분하게 하기 위해 슬로우카우를 사다 먹고 있다.


현재에 집중하면 된다는데 왜 이렇게 그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자꾸만 어두운 미래만, 불행한 미래만 떠오른다. 어느 것이 행복인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다. 시험기간인데 매우 싱숭생숭하다.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고 싶다.